우리는 교육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전 세계 사람들은 자신들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학습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여 학교 밖, 즉 가정, 도서관, 인터넷 카페, 일터 등에서 자기 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2차 교육혁명」은 이런 이야기들은 교실 학습이라는 전통적인 교육 모델에 이의를 제기한다.
책의 저자가 미국인이다 보니 이러한 교육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조금의 벽이 있었다. 따라서 4장에 있는 미국의 교육사를 먼저 소개하고 이 책의 서평을 쓰려고 한다. 미국의 교육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가정교육이 주를 이루는 도제교육에서 정부가 개입하여 교육을 실시하는 보편적인 교육(공교육)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공교육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교육이었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아 미국의 교육은 학교에 반영되어야 할 엄청난 기술과 사회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변화무쌍한 사회에서 교육이 지향해야 할 과제를 학교교육과 학습의 분리라는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교육은 교육받은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서 젊은이들을 컴퓨터 화면 뒤로 몰아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홈스쿨링, 학습센터, 일터 학습, 원격교육 등 새로운 대안학습의 급성장 속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산업시대의 학습기술에서 핵심적인 것이 획일성, 교훈주의, 교사의 통제였다면 지식시대의 학습 기술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맞춤식, 상호작용, 사용자의 통제라고 할 수 있다. 지식 시대에서 기술은 사람들이 자기 관심과 목적을 추구하게 해주는 액세스를 강조한다. 기술은 교육을 학교 밖, 가정, 일터, 취학 전과 졸업 후, 퇴근 후와 근무시간 이후로 이동시키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과 교육과 기술의 조우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두 의견이 대립을 이룬다. 바로 기술 옹호론자와 회의론자이다. 옹호론자들은 19세기의 기술로 21세기의 학생들은 준비시키는 것은 자전거를 타고 우주를 비행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19세기에 비해 21세기는 사고방식이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 변했다. 또 학습자의 능력까지도 제고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에는 일반 작업현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기술적인 학습이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보다는 학생들이 학습의 대부분을 주도하여 실천하는 구성주의 학습이론을 지지. 이들은 학생들이 성적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학습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듀이의 교육사상에 동조한다.
하지만 회의론자들은 학교가 컴퓨터를 도입하게 괴면 교실의 다양하고 풍부한 교수-학습을 예측 가능한 암기 학습의 형태로 변질시키고 상업적인 미디어의 무분별한 이익 추구로 학습경험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신기술을 결코 학교교육에서 핵심부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학교시스템은 일반적이어서 충분히 검증된 사실에 의존하며 신기술의 가능성보다는 주로 위험에 더 큰 반응을 보였다. 또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점과 교실 관리가 힘들어진다는 점, 컴퓨터가 전통적인 교사가 가르치는 도덕적인 부분을 케어할 수 없는 점 등 많은 이유로 학교에 기술이 혁신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회의론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기초능력과 심오한 학술 지식을 획득해야 한다는 사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학교는 최근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기술혁신이 아닌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축적해온 중요한 지식을 가르치는데 역점을 두기를 원한다.
이러한 양립 속에서 현 시대의 교육은 학교에 반영되어야 할 엄청난 기술과 사회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예전의 학교제도는 가끔 기존의 학교에 건물, 교사 프로그램 등 대강 보충해 가면서 교육과정과 지역 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맞추어 발전해 왔다. 이는 학교의 운영 환경이 변화하는 동안 학교제도가 매우 안정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현재의 기술 변화는 학교에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술 혁명은 교육제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기술이 사회의 일상적인 직업 종사자들을 급속하게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연구자와 평생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사회가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다양한 시술을 사용하여 복잡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더 요구되는 추세이다. 이것은 교육이 사실을 암기하고 일상적인 일을 수행했던 전통적인 목적에서 탈피할 것을 요구하는 강한 압력을 의미한다.
이렇게 강하고 피할 수 없는 압력 속에서 새로운 교육제도의 씨앗이 나타난다. 홈스쿨링, 일터학습, 원격교육, 성인교육, 학습센터, 교육용 TV와 비디오, 컴퓨터 기반 학습 소프트웨어, 기술 자격증, 인터넷 카페, 평생학습이 그런 것인데 이것들의 특징은 학교 교실 내에서 교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교실 밖에서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씨앗들이 맺히기 까지 미국의 교육은 세 가지 시대로 분류된다. 이 세 가지 시대는 도제 교육에서 학교교육으로 그리고 평생 학습 교육으로 분류된다. 이 세 시대 동안 교육의 책임, 기대, 내용, 교수 방법,, 평가, 장소, 문화, 관계가 모두 시대에 발맞추어 변하였다. 도제교육시대에서 보편적인 학교교육의 시대로 변화했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동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다. 보편적인 학교교육에서 평생교육으로 넘어가는 우리는 교육의 책임을 국가로부터 되돌려 받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학습에 대한 기술을 꺼리거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술을 이용한 학습법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
기술을 이용하여 학습자가 학습을 하게 되는데 에는 여러 가지 매력이 있다. 먼저 종이와 분필을 벗어나 더욱더 다채로운 교육방식에 매력을 느끼며, 기존 교육의 방식에 비해 학생들의 참여 또한 큰 매력중 하나이다. 이러한 기술은 학습자의 특별한 능력과 욕구에 맞게 교육을 개인화할 수 있는 컴퓨터의 능력에서 나온다. 기술은 웹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든지 지식의 액세스를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초점이 사람들의 관심과 능력에 맞춰지게 되면 학생 간의 경쟁은 힘을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육을 정부에서 부모와 개인에게 넘기는 것은 학습의 책임을 가정에 맡긴다는 것이다. 이로써 부모의 관심이 자식들에게 더욱 쏟아질 수 있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회의론자들은 공교육의 역할이 축소됨과 동시에 학습의 접근과 평등의 문제가 야기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개인에게 교육이 더욱 집중되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양교육의 쇠퇴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교육, 즉 학교가 사라진다면 학습자들은 사회적인 상호작용의 감소로 고립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결론은 기술이 교육의 침투하면서 교육의 평등 문제가 더욱 증대한다. 간단히 말하면 최상의 교육을 구매하는 이들이 훗날 경쟁해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은 학생들을 학습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게 하여 최상의 교육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촉진시킬 수 있다. 학교는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학교 밖의 기술 자원을 이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수행평가를 통하여 학교 밖의 기술 자원을 이용 할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격증이다. 실제로 현대는 수많은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이러한 자격증의 발부는 학교에서 해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거나 여러 가지 기술 매체들을 이용해서 발급을 받는다. 이러한 자격증은 자신의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나타내 주는 증서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학교에서 발급하는 졸업증서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학교는 새로운 교육 과정을 설계함으로서 신기술을 학교 안으로 끌어 들일 수 있다. 이러한 교육 과정의 개선을 통하여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이 자유로워지는 많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위에서 회의론자가 말했듯이 이러한 기술의 도입이 평등 문제를 증가시키는 것을 우려해 학교 밖인 디지털 세계에서 평등에 관한 새로운 접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인 발달이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평등의 목적과 글로벌 경쟁에서 균형을 유지하게 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것은 교육의 독자적인 재고가 아닌 사회, 교육, 학습의 상호작용으로서의 재고를 요구한다. 오늘날 보편적인 미국의 학교교육은 미국 사회의 중산층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기술, 민영화의 엄습과 소득 불평등의 증대는 이런 비전을 크게 후퇴시키고 있다. 학교교육의 중요한 결과를 경제적인 성공에서 찾는 것은 도덕적, 정치적인 교육의 목적을 주변으로 몰아낼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현재의 교육이 점진적인 변화에 적응하도록 설계된 성숙하고 안정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급진적인 변화를 받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인 실정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학부모와 시민들은 이처럼 매우 광범위한 교육 개혁관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학교 지도자들과 교사들은 학습기술이 얼마나 효과적이며 그것이 교사와 학습자의 기본적인 상호작용을 어떻게 변화시키게 될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술 지도자들은 마법의 선물을 가져오는 사명가가 아니라 새로운 학습기회를 창조하는 협력자로서 교육자들과 협력하여 일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한다.
시대가 바뀌고 사상이 바뀌며 가치조차도 바뀌었다. 심지어는 옛 학자들이 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교육의 목적마저 바뀌고 있다. 이렇게 변화해 가는 세태와 학생들, 전문가와 부모들 앞에서 나는 어떤 목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다. 교육의 목적은 교양인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배우고 그렇게 굳건히 믿고 있던 나에게 교육은 학생들이 직업을 갖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본 나의 감정은 충격 그 자체였다. 책을 읽다 보니 우리나라의 학교는 미국의 학교와 많이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해방 후 무방비했던 우리나라 교육이 미국에게서 공교육 제도를 따왔듯이 신기술을 이용한 교육방법의 변화와 과정의 변화 또한 무지하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책에 나온 홈스쿨링이나, 원격교육, 학습 소프트웨어, 교육방송, 인터넷 카페, 평생학습 등은 이미 보편화되어있다. 책은 씨앗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떡잎을 넘어 봉우리를 머금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무섭게 변화하고 또 그 변화한 것이 당연시 되는 이 세상에서 나는 뒷방에서 과거의 회상만을 즐기는 늙은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얼마 되지는 않지만 내가 적립해 놓은 교육의 이상을 품고, 그 이상을 학생들에게 펼치기를 원한다. 교사는 학생들을 사랑하며, 도덕을 가르치고, 학생들을 교양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을 아직까지는 유지하려고 한다. 학교는 실생활에 쓰지는 않지만 대학 입학이나 직업을 갖기 위해 억지로 배워 시험을 치르는 곳이 아니라. 이 사회 구성원의 기본 소양과 지식을 기르고 배워야 할 것을 배우는 곳이다. 교육은 평등해야 하며, 부모의 직업과 부, 그리고 출신에 상관없이 동등한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앞으로의 세태와 가치관이 얼마나 빨리 어떻게 변할지는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나의 가치관이 언제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현재의 나는 이것이 건전하고, 올바른 가치관이라는 것을 끝없이 변증하며, 학생들을 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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