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교에서 여러 장르의 글을 읽을 때 글의 문맥과 상황을 생각하며 읽으라고 배운다. 실제로 많은 시험들이 그렇게 읽는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 가지 책에서 만큼은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지 않는 것 같다. 바로 성경이다.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
만해 한용운 선생의 「나룻배와 행인」이다. 대한민국에서 수험생의 신분으로 있었다면, 이 시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나룻배는 누구이고 행인은 누구일까? 이 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룻배는 시련당한 사람이요 행인은 그 사람을 떠난 매정한 사람으로 비추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가 일제강점기에 쓰인 것을 안다면 해석은 달라진다. 나룻배는 한용운 선생 자신 또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간절히 원하는 동포들이요 행인은 해방된 조국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작가가 승려라는 점을 감안하여 나룻배를 부처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쓰인 지 100년도 되지 않은 시 한 편 해석하는데도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직업을 생각하며 읽는데 2000여 년 전에 쓰인 성경을 보는 우리는 그 시대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그런 배경지식 없이 나룻배를 ‘떠나간 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약시대의 사회와 문화」는 이러한 우리의 실수를 조금이나마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신약시대의 유대적 배경과 로마적 배경, 그리스-로마의 철학과 도덕, 종교와 사회 구조 등을 다루어 2000여 년 전에 그리스도인들과 조금이나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또 신약성경을 좀 더 풍성한 지식과 배경을 가지고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저자는 먼저 예수님의 생애와 직접적인 연관되는 상황인 유대의 종교문화에 대한 다양한 면모들을 살피고 로마 제국의 정치 구조를 살핀다. 그 후에 그리스-로마 문화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장은 이 책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외국영화의 언어유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우리가 10~20년 전의 농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신약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만 신약시대를 알아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있다. 신약시대는 결코 전공자만이 알 수 있는 방대한 세계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도 그 시대에 대해 알아가면서 신앙이 더욱 견고해졌다고 고백하면서 이것으로 인해서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로마시대에서 감옥에 있는 것은 형벌이 아니었다는 것과, 성만찬을 할 때 식탁에 앉아서 한 것이 아니라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아 비스듬히 누워서 만찬을 즐겼다는 것을 말해주는 등 몇 가지 예를 제시하면서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린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렇게 우리의 패러다임을 깨 주고 나서 저자는 앨런 잰슨의 표현을 빌려 “우리는 문맥, 상황을 고려하며 독서해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피할 수 없다. 짐작하건대 지금까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독서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 신약시대로 들어가 보자.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속의 배경은 어디일까? 바로 유대 땅이다. 예수님도 유대인이셨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도 유대인이다. 구약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대인들의 나라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고 성전은 무너졌다. 이때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애굽으로 또는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이렇게 이방의 땅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자손들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이주한 땅에서 정착하여 삶의 터전을 이루었고, 그 가운에 성전을 건축하였다. 물론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은 이를 가증스럽게 여겼다. 이런 식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지중해 연안에 걸쳐 살고 있었으므로 로마인들과 헬라인들은 자연스럽게 유대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렇게 자신들의 땅에서 멀어지게 된 시간이 길어지자 그들은 그들의 언어이자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점차 잊게 되었고 이러한 현상 가운데 학자들이 성경을 그 땅의 언어 즉 헬라어로 번역하기 시작한다. 이 번역의 참여했던 학자들이 70명이었으므로 이것을 70인 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만 헬라의 영향을 받았을까? 당시 이미 유대 땅은 로마 치하에 있었고 그전에는 알렉산더의 치하에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보았을 때 유대 땅도 헬라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에 저자는 헬라 문화가 여러 방향으로 유대 땅에 침투했다고 말하면서 이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들이 애를 쓰는 과정에서 각자의 성격대로 많은 분파가 생겼음을 말한다. 보수적인 사두개파부터 진보적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바리새파, 헤롯왕을 지지하는 헤롯당과 다소 과격한 열심당, 그리고 경건을 추구하는 에세네파 등 많은 분파가 자신의 신앙을 지키려고 노력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예수님은 태어나셨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하기도 하고 랍비라고 하기도 하며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유대의 랍비와 같이 사람들을 가르치셨으며 율법을 파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헬라의 영향을 받으셔서 유대교를 초월하셨다. 이렇게 초월적이셨지만 유대인교의 한계 내에서 비교적 자유로우셨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유대교와 예수님의 가르침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경건한 유대교를 따르려 했으나 차츰차츰 분리되어 2세기에 가서는 겉에서나 안에서나 완전히 다른 종교가 되었다.
신약성경은 유대교와도 관련이 있지만 1세기의 정치 흐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수께서는 어떤 부분에서는 정부에 복종하라고 말씀하셨으며, 재판받는 동안 아그립바와 빌라도와도 대면하셨다. 저자는 신약성경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개론적으로나마 로마의 정부 구성과 그들의 통치자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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