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하나님의 형상
1. 구약의 가르침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가르침은 세 본문에서만 명시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세 본문은 창세기 1:26-28, 5:1-3, 9:6이다. 창세기의 처음 장은 인간 창종의 독특성을 가르친다. 동물들은 각 종류대로 창조하셨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이다. 헤르만 바빙크는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가장 높고 풍성한 계시이며 따라서 온 창조 세계의 머리이자 면류관이다”라도 표현했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형상”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첼렘”으로 표현한다. 이 단어는 ‘조각하다’ 또는 ‘자르다’라는 뜻의 어근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어떤 동물이나 사람의 조각된 모양을 표현하는 데 사용 하고 있다. “모양”이라는 단어는 “데무트”로 표현하고 있는데, “~와 같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뜻은 인간을 창조할 때는 인간이 하나님을 반영하고 있음을, 즉 인간은 특정한 측면에서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표상임을 뜻한다.
인간이 어떤 변에서 하나님을 닮았는지 창세기에서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창세기 1장 26절에서 짐승들과 땅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면이 하나님의 형상이 지닌 한 측면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또 1장 27절에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모습에서 인간은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교제하는 존재로의 하나님을 반영한다. 1장 28절에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명령을 주신 사실을 근거로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인격체로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하나님을 닮았다고 추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1장 3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은 인간이 창조되었을 당시 타락하거나 부패하거나 죄에 물들지 않았다. 인간은 고결하고 순수하고 거룩한 상태였다.
하나님의 형상을 다룬 창세기 5장 1~3절이다. 5장 1절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모양대로 지으셨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내용이 나온다. 타락기사 이후에 등장하는 이 진술은 여전히 아담을 하나님의 모양으로 창조된 사람이라고 일컫는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타락 이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히 상실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주장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5장 3절에서 아담이 자기 모양으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한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아니라 아담의 형상과 모양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아담의 아들 셋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잃었다는 것은 아니다. 아담이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면 우리는 아담의 아들 셋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고 추론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다루고 있는 세 번째 본문인 창세기 9장 6절은 “다른 사람의 피를 들리며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이다.
이 구절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홍수는 줄어들었고, 노아와 노아의 가족은 방주를 떠났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 뒤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시는 인간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실 것이며 인류를 위한 자신의 구속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땅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창세기 9장 6절 이전에는 번성하여 땅에 가득 하라는 명령의 반복, 동물들이 인간을 두려워할 것이라는 말씀, 고기를 먹도록 허락은 피와 함께 먹는 일이 금지 됨, 사람을 죽이는 동물과 인간에게 그 생명의 피를 요구하신 후에 우리가 앞서 언급한 6절의 말씀이 등장한다.
6절에서는 사람을 죽인 존재(짐승 또는 사람)에 대해서 처형이 어떻게 발생할지, 예외는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고 하나님을 표현한 존재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한 인간을 죽이면 그는 생명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이 반영된 하나님 자신에게 해를 입힌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건드리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건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구약의 본문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사실 우리는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해야 한다. 구약의 관점에서는 이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2. 신약의 가르침
신약의 한 본분은 타락한 인간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분명하게 가르치며 따라서 앞서 언급한 구약 자료에 대한 신약의 메아리다. 야고보서 3장 9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혀)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 하나니”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0-12절 내용에도 주목해야 한다.
야고보서 3장 9절의 배경은 혀로 짓는 죄 – 우리 모두가 넘어지는 영역 – 에 대한 논의다. 인간은 과거의 어느 때에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지음 받았으며 지금도 그 형상을 지닌 존재인데, 같은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인간을 저주하는 것은 모순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타락이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어떤 해를 끼쳤든 그 형상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서술하는 구절을 통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로 기록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게 되며 그리스도를 보는 자는 실제로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유심히 본다면 너는 아버지를 보게 될 곳이다. 나는 아버지의 형상이기 때문이다”라는 성찰을 주신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이라는 사실을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성육신과의 중요한 관계를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전적으로 죄가 없으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을 본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시각적 보조수단을 활용하듯, 하나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시각적인 본보기를 보여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봄으로써 무엇이 하나님의 형상인지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의 삶에서 핵심이었던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인간을 향한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처럼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여러 신약 본문들은 어떤 의미해서 하나님의 형상은 회복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친다. 로마서 8장 29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생겨나기 전에, 또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은 자신의 택하신 백성을 미리 아셨다. 그리고 미리 아신 그들을 그 아들의 형상과 같아지게 하시기 위해 미리 정하셨다. 인간이 죄에 빠짐으로 하나님의 형상은 명백히 크게 부패했거나 망가졌으므로 인간은 다시 한번 그 형상을 본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은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새로워 짐에 대해 말한다. 모세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교제한 뒤에 모세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고 있었다. 이 광채는 너무 밝아서 모세는 가렸지만 오늘날 우리는 가리지 않은 얼굴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반사할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주의 영광을 반사하면서 지속적으로 그 영광이 반사되고 있는 주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있다. 바울은 계속해서 이 변화는 영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한다.
로마서 8장 29절과 3장 18절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의 구속의 목표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두 본문 모두 타락의 희생자인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거나 그 형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변화함으로써 얻는 새로운 자아가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점진적으로 새롭게 된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되게 빠지므로 인해 원래의 형상을 너무 크게 부패시켜서 원래의 형상이 구속의 과정에서 회복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속의 목표는 하나님의 백성이 삶의 다른 측면과 아울러 지식에서도 총체적으로 흠 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가 되는 것이다. 완전한 방향에 변화에는 매일의 점진적인 변화가 수반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새사람이지만 아직 변화되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신약성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속 목표는 하나님을 점점 더 닮아 가는 것,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 가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 자신이 지상에 계실 때 이처럼 자신을 닮을 것을 요구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뒤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예수님은 결과적으로 모든 신자에게, 낮은 자세로 섬기는 자신의 본을 따를 것을 지시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모두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며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곧 하나님을 닮은 것이다.
성경의 증거에 충실하여지자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다음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해야 한다. (1) 그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상실될 수 없는 한 측면, 이간의 본질과 존재의 일부,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기를 등장하지 않고는 상실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2)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또한 인간이 죄에 빠졌을 때 뒤틀려 버렸고, 성화의 과정에서 회복되고 새롭게 되어가는 하나님의 닮은 모습으로도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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